2009. 11. 2. 17:40 이슈를 말해죠~/기타

잠깐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하자면요.

저는 저주받은 손입니다.
컴퓨터(마우스-포토샵)를 사용하면
어떻게든 형체라도 나올텐데

손으로 그리려고 하면 ...

소, 손이 ...




...하튼 손재주는 지지리도 없는 모양인지 악필도 쩝니다.

그런 저였기에, 제 어릴 적부터의 동경의 대상은 바로 그림쟁이들이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만화 캐릭터 잘 그리는 애들이라던가,
이것도 그림이랍시고 그렸냐고 혼나는 제 옆에서 미술점수 만점받고 웃는 능룍자 짝꿍이라던가...

손을 뻗어 닿기엔 너무도 먼 그들 앞에서
저는 어느덧 미술점수를 따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아 진짜 굴욕의 미술점수만 생각하면 ...으흐르긓그극흑그극흑)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2006년.

대학에 진학한 저에게는 이내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는데, 
우연인지 뭔지 = = 그 친구들은 하나같이 쩌는 실력의 인터넷 그림쟁이들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블로그를 순회하던 중 '오캔'이라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읭? 오캔?






1. 오캔이 뭔데?

오캔이란 오픈 캔버스의 준말으로
뭐 쉽게 말해서 포토샵의 기능을 최소화해서 넣은 그리기용 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누르시면 창이 닫힙니다.

진짜 포토샵처럼 생겼죠 ...

이렇게 평범한 이미지툴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이
왜 그림판의 대중성이나 포토샵의 아성을 넘는 막강한 놀이 커뮤니티성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이번 포스팅에서 알아보도록 해요 :)





2. 오캔으로 노는 법


뭐 기본적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툴이니까요.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부터 보자면 ...





뭐 이런 능력자들의 세계 ... 이런 좌절감 ...

이건 어쨌든 도입이니까, 아무튼 유저들은 오캔을 써서 이렇게 그림을 그려냅니다.


근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독특한 놀이문화를 만드는 오캔만의 특성이 있다는 점인데요.

'자캔'과 '넷캔'이라는 단어가 이를 잘 드러내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자캔

혼자 그림그리고 노는 일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없습니다 ;)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의 솜씨 같은 주옥같은 그림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ㅠㅠ

그리고 ...






제가 존경하여 마지않는 능룍자 그림쟁이님들은 가끔 이런 일도 하십니다.
"모작"이라는 건데, 사진을 보고 그 느낌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겁니다.

원본 사진을 보지 않으면 사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무서운 퀄리티를 자랑하죠.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머리카락이 ... ㄷㄷㄷ




 - 넷캔

스타크래프트 네트워크 멀티 플레이처럼, 아이피 주소로 복수의 사용자가 접속하여 함께 그림을 그리는건데, 이게 바로 오픈 캔버스의 진정한 놀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메신저의 화이트 보드와의 비교는 하지 말아주세요!
화이트 보드는 단순히 보드마카하고 지우개만 갖춰놓은 반면
오캔은, 그림쟁이에게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갖춘 화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캔버스를 가지고 동시에 작업을 한다는 특성을 바탕으로,
친구랑 하나의 캔버스를 같이 쓰면서
타블렛으로 손글씨 채팅이나 의미없는 낙서를 하기도 하고
공통 주제를 정해서 각자 그림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몇 점 같이 볼까요?




물 / 불 / 바람이라는 ...오덕들에게는 마법기사 레이어스를 연상시키는 키워드로 세명이 각각 그린 그림입니다.

각기 다른 표현법이 그 주인을 나타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죠.








죄수라는 주제로 네명이 자기 머릿속의 죄수를 그려봤습니다.

정말 개성이 뚜렷이 보이죠? ㅎㅎ









천사와 악마라는 주제로 두명이 각기 한쪽을 맡아서 그린 그림입니다.

이건 정말 걸작이라고 봐요 ㅠㅠ



그 외에 ...




네명의 유저가 혈투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린 그림인데요,
이런 그림은 하나의 캔버스를 분할없이 같이 쓴다고 해서 특별히 '합캔' 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3. 커뮤니티를 활용한 놀이 문화

여기서는 다음의 오픈캔버스 카페인 '오캔수련장'을 예로 들어서,
커뮤니티로 확대되는 오캔의 놀이 문화를 보도록 하죠. 


 - 오캔벗 구하기

오캔합시다 게시판에는 실시간으로 누군가와 오캔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혼자 놀기 심심해서 쩔어 있는 사람들이죠 ;;
그런 사람들이 남겨놓은 메신저 아이디를 친추하면, 그 사람과 아이피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같은 캔버스를 쓰게 됩니다.



 - 주제 설정

카페 자체에서 이벤트 같은 것을 할때, 하나의 주제를 설정해서 공모전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제가 소개하는 카페의 경우 대문에 걸린 그림이 9월달 주제였던 '가을 소녀' 공모에서 1등하신 분이네요 ㅎㅎ



 - 색칠공부 

한 사람이 먼저 아무 색을 칠하지 않은 밑그림을 첨부해서
"색 좀 칠해주세요~"라는 식으로, 원하는 느낌 등을 써서 색칠원본 게시판에 업로드 합니다.

그러면 카페의 오캔 유저들이 그림을 보고, 자기가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내키는대로 색칠을 해서 [~~님, 색칠했어요!]식의 제목을 붙여서 색칠완료 게시판에 올리는 거죠.

아래가 실제 사례입니다.



 



같은 밑그림으로 시작했는데도 칠한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죠.

인터넷을 기반으로 두었기에 가능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ㅠㅠ




 - 베스트 갤러리

카페에 올라왔던 그림들 중 회원들의 반응이 좋은 고퀄릿 그림은 베스트 갤러리에 등록되는 영광을 안게 됩니다.
아까 소개했던 모작그림도 베스트 갤러리에 등록되어 있었구요 -
정말 이렇게 많은 능룍자 그림쟁이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니ㅠㅠ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 잉여력을 어떻게 활용만 할 수 있다면 ...

오캔 유저들이 스스로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베스트 갤러리에 한번 뜨면 진짜 엄청나게 영광스러워 하더라구요 ㅎㅎ





4. 마무리하며 끄적끄적

조사하면서 참고한 커뮤니티들 및 조사하며 느꼈던 것들.


- 다음 카페 오캔수련장(오수)

규칙이 무지하게 엄격한 동네입니다.
게시판에 제목에 대한 형식 규정 같은것도 있고... 여러가지 엄한 공지들도 많은데;
ㅋㅋ ㅎㅎ 등의 초성체를 쓰면 게시글이 가볍게 삭제되고 경고까지 먹어요 ;;
덕분에 그런지, 확실히 예의가 지켜지고 있는 물 맑은 동네라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카페 활성화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은듯 합니다;; 


- 네이버의 오캔으로 그리기

오캔 카페 중에서는 회원수 3만 7천으로 제일 규모가 크고, 역사도 오수보다 1년쯤 오래 됐네요.
활동량 면에서도 진짜 잘나갑니다.
여기서 활동하면서 동인지 등을 만들어서 코믹월드 같은데에 부스내고 판매하는 분들도 보이고요.

제 친구들을 비롯한 그림쟁이들이 네이버 블로그를 많이 운영한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 동네 만의 골칫거리 : 표절문제
가수들이 표절시비에 시달리는 뉴스를 심심찮게 봅니다만,
이런 오캔 커뮤니티에선 그놈의 표절이 항상 큰 이슈입니다.  

그림 실력이 사람 평가의 제1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커뮤니티 특성상 벌어지는 일이기도 한데,
자신의 이미지를 과대포장하여 유명한 능룍자 그림쟁이들(일명 네임드)와의 친분을 노릴 목적으로
몰래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자기 것인마냥 올렸다가 들켜서 커뮤니티로부터 강퇴를 당하거나
비난 및 공격의 표적이 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창작자들의 커뮤니티라 그런지, 그런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가 없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이 게시물에 달려있던 댓글보고 뿜었습니다.

"여긴 사진 올리는 데가 아닌데..."




아아 - 조사를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그림쟁이들의 세계 ...

다음 발표로는 이번 발표의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ㅇ_<
posted by 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