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7 13:16 분류없음
저번 포스팅에서는 그림쟁이들이 서로 원격으로 접속하여 낙서하며 노는 오캔 문화에 대해 소개했습니다만
사실 오캔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여러 그림쟁이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을 때, 그들의 첫마디는 이러했습니다.

"응? 오캔이라고? 비툴이 아니라?"


비, 비툴...?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입니까.
오캔은 차라리 옛날에 들어본 적이라도 있지 ...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비툴이 뭔데?


"...요즘은 비툴이 대세야."




1. 비툴은 또 뭐야

비툴은 ... 쉽게 말하면 게시판의 일종입니다.
그림쟁이들을 위해 특화된 툴을 갖추고 있는 ActiveX 게시판이죠.

게시판 + 그림판(+α) = 비툴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웹 게시판들은 단순히 글을 쓰고, 여기에 사진 등의 파일을 첨부하여 글을 작성하는 구조가 대세지만,
비툴은 좌측의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공간을 크게 마련해 주고, 바로 이런 그림이 주가 되는 게시판인거죠.

물론, 게시판인만큼 일반적인 멀티미디어 첨부, 댓글, 답글 기능도 전부 지원합니다.









검색어에 "비툴"을 쳐서 나타나는 제일 첫 사이트는 "비툴세상"이라는 곳인데,
바로 여기가 이 비툴이라는 툴을 개발한 곳입니다.



여기서 비툴 분양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는데,
비툴은 그냥 쓰는게 아니라, 분양받아서 쓰는 툴입니다.

분양 신청을 하면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게시판 계정이 하나 나오고,
이 계정을 자기 홈페이지에 연결하면, 바로 비툴 커뮤니티가 생성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번 생성해봤습니다.






2. 비툴로 어떻게 노는가

이놈의 비툴이 그림쟁이들을 확 끌어당기는 요소가 있으니,
앞서 언급했던 비툴 커뮤니티만의 독특한 문화입니다.

비툴 세상의 게시판처럼, 그냥 자유게시판으로 쓰는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만
대부분의 비툴 유저들은 비툴을 분양받아서 하나의 놀이를 시작합니다.

그 과정을 단계별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 1단계 : 놀이주제/세계관 설정

세피(가명)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칭 하찮은 그림을 조금 그릴 줄 아는 그림쟁이입니다.
이 분에게 어느날 창작의 신이 도래하샤 아래와 같은 계시를 내려주십니다.


history.gif


세피는 이 세계관으로 선량하고 개념있는 그림쟁이 인간들을 모아 훌륭한 세계를 구축하리라 다짐합니다.









- 2단계 : 비툴 커뮤니티 개설

그는 새로운 세상의 주춧돌을 깔기 위해 비툴세상으로 달려가 일단 비툴 게시판을 하나 분양 받고, 
적당히 무료 홈페이지 계정을 생성한 다음 분양받은 게시판을 링크시킵니다.

http://whiteluna.mireene.com/freefree/

그리고 이 세계의 창조신화와 모두가 지켜야 할 기본적 룰 등을 간단히 여기저기 적어놓고서
여기에 살 인간들을 찾으러 나섭니다. 








- 3단계 : 비툴 커뮤니티 멤버 모집

세피는 십계명 세계관을 들고 커뮤모아라는 사이트로 갑니다.
이 곳은 그와 같이 자기만의 세계관을 들고 쓸만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인간들과, 
마음에 드는 세상에서 한바탕 놀아보자는 인간들로 득시글득시글거리는 곳입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세계를 소개하는 글을 적습니다.
커뮤니티 이름, 주소와 모집 기간모집 인원은 물론이고
개념있는 인간들을 필터링하는 가장 최소한의 기준으로 나이제한을 둡니다.
가끔 너무 어린 초딩들이 개념없는 짓을 해댄다거나
수능을 앞둔 고3들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실컷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자기 세계관의 장르... 감히 판타지 따위로 분류할 수 없는 창대한 세계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판타지라고 일단 적어두고, 적당히 간지나는 그림을 그려 걸어둡니다.

운영 기간도 적어줘야 합니다.  
세피는 두달 후면 군대에 가기 때문에 그 전에 이 스토리를 완결내고 싶거든요.









- 4단계 : 멤버 구성 완료 및 커뮤니티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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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메일을 확인해 보니 10통의 신청 메일이 도착해 있습니다.

세피는 이들의 메일을 읽고 자기가 구상하는 세계의 대강의 흐름을 적은 후, 이에 맞게 캐릭터를 설정해 보내달라고 합니다.

다음 날, 9통의 메일이 와 있습니다.
이 중에 2명은 자캐(자기 캐릭터) 그림을 첨부하지 않았으므로 보지도 않고 자릅니다.
비툴의 룰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또 1명은 자기 세계관과는 어울리지 않게, 웬 귀여운 강아지를 그려왔습니다.
가차없이 자릅니다.  이런 인간은 나중에 무개념으로 불화를 조장할 소지가 있습니다.


또 1명의 캐릭터 설정을 읽어봅니다.
인간, 대장장이, 무기 잘 다룸.  범죄자를 싫어함.

재미없습니다.
....
뭔가 톡톡 튀는 요소가 있어야 한단 말이죠.





루스펠(남, ??세, 184cm)
주로 자신의 별에 틀어박혀 있고 전장에 잘 나서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소문만이 무성하다. 
얼마나 살았는지도 모르며, 소문에 의하면 그는 100번을 죽어야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응모가 있으면 아주 흐뭇합니다.  고퀄의 작품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세피는 5명의 멤버를 최종 선발합니다.





- 5단계 : 스토리 진행 ~ 미션 부여

이렇게 세피는 5명의 멤버를 최종 선발합니다.
드디어 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우주 범죄자와의 전투"

라는 주제를 내걸고 몇마리의 NPC를 그려서 걸어줍니다.

비툴에 로그가 팍팍 납니다.
5명이 질세라 범죄자들을 잡는 그림을 그립니다.


다음 미션입니다.  몇 가지 캐릭터를 새로 그려줍니다.

"신족과의 첫대면"

뭐....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 6단계 : 사건 발생

가만 지켜보니 요즘 흐름이 심상찮습니다.
A라는 사람이 B가 만든 여자캐릭터에 무지 호감을 가진 모양입니다.

급기야 자기 그림에 멋대로 B의 캐릭터를 넣고 고백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다행히도 B가 이 호감을 받아들인 덕분에 두 캐릭터가 사이좋게 다니는 그림들이 보이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B가 말도 없이 잠적합니다.  더 이상의 로그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들려오는 소리로는 A와 B가 메신저에서 한바탕 했다는군요...

분위기 흐려놓고 뻔뻔스럽게 활동하는 A가 얄미워 세피는 A를 잘라버립니다.
할수 없이 멤버의 추가 모집을 해야 할듯 ...







- 7단계 : 결말은 어디로 ~ 해피 엔딩? 배드 엔딩? 

이 동네 엔딩이래봐야 별 거 없습니다만

   1) 해피 엔딩

세피가 군대가기 전에 대충 이야기가 정리되어서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납니다.
보나마나 우주가 평화를 찾았겠죠 뭐 ...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격려의 글로 자축합니다.


   2) 배드 엔딩

...나의 세계관이 재미가 없었던 걸까요.
모두가 잠적해버리고 맙니다ㅠㅠ

...듣보잡 나의 세계는 어느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성공작 :
흐음? :




3. 비툴에 관한 다른 얘기들.


- 제약과 한계...
워낙에 소규모에다 폐쇄적인 문화다 보니까 잘 알려지지도 않고 - 
비툴이라는 액티브X 게시판에 중심이 있다보니 기존 포털의 카페로 흡수되기도 어려운 모양.


- 내부 분위기
저번 발표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림쟁이들은 뭐랄까 스스로 자격지심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서로 칭찬하며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계만의 독특한 말투가 있다기에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가령 B라는 사람이 비툴에다가 자기 나름대로 A의 자캐를 그렸다고 칩시다.
그럼 A는 거기에다 이런 댓글을 답니다.

"아이구 세상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B니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리애가 아닌거같아요 아ㅏㅏㅏ왜이렇게 이쁘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으앙 사랑해요 쫩쫩"



...... 이런 말투를 비커체라고 한다는군요.  ( '')



아무튼 재미있는 세계입니다 ㄷㄷ


posted by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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